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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속도의 노예다. 느긋함의 미덕이란 안중에도 없다. 웹페이지가 1초 안에 로드되지 않으면 짜증이 솟구쳐 그냥 창을 꺼버린다. 그래서 우린 윈도 비스타가 그렇게도 싫었나보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관리자 권한이 어쩌고 물어오는 것주1이나 기존 프로그램들의 구동 여부 문제도 있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XP보다 느린 속도가 비스타를 멀리하게 한 주범이 아니겠는가. 덕분에 욕을 질리도록 얻어먹은 후, 윈도7은 엄청나게 빨라졌고.

윈도7 자랑은 그만두고 다시 원래 흐름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컴퓨터 속도주2에 집착하는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1. 게임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프레임이 적다/옵션을 낮춰야한다)
  2. 부팅을 기다리기가 지루하다.
  3. 프로그램 진행 중 끊기는 경우가 있다.
  4. 그냥 죄다 느리다.
  5. 그리고 나머지 잡다한 이유들

1 번의 경우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이다. 젊은 남자의 절대 다수가 게이머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여러 종류의 게임을 접할수록 눈이 갈수록 높아져 예전 게임은 눈에 잘 차지도 않는 현상을 많은 게이머들이 경험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 눈이 높아지는 부분은, 시스템이나 스토리 같은 것보다 바로 눈에 일차적으로 들어오는 그래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결국 하고 싶은 게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자신의 컴퓨터 앞에서 울상을 짓는 비극이 생기고야 만다.

2, 3 번은 생략하고, 4 번의 경우, 놀라운 사실이 숨어있다. 몇 년 전을 되새겨보자. 우린 무려 256MB 짜리 RAM을 가진 컴퓨터로 잘도 윈도XP를 썼다! 우리 집에도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는 그 신석기시대 컴퓨터를 한 번 부팅해보자. 와우, 이게 컴퓨터야, 명상기계야? 바탕화면에 아이콘 하나 더블클릭했더니 창 하나 뜰 때까지 천만 년이 걸린다. 하지만 난 옛날에 그 컴퓨터를 쓰면서 느리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 없다. 왜냐고? 그 컴퓨터 옆에는 언제나 CRT모니터와 함께 내 초등학교 시절을 같이 보내준 구석기시대 컴퓨터가 있었으니까.

비교대상의 원리다. 윈도 비스타. 사실 그렇게 못써먹을만큼 느리지 않다. 그냥 XP가 빠른 거다. 우리 아파트 옆에 마당만 운동장만한 3층 단독 주택이 생긴다고 생각해보자.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저 돈밖에 없는 넘들…이라고 패배자의 궁시렁거림을 반복하겠지?

이야기 많이 돌아왔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CPU 클럭에 대한 이야기다. 영어/기계 혐오증 환자들을 위한 배려로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CPU는 컴퓨터에서 어지간한 일처리 다 하는 녀석이고(말하자면 인간의 뇌 같달까?) 클럭은 그 CPU가 생각하는 속도라고 할 수 있겠다.

클럭을 입에 올릴 때는 보통 둘 중 하나다. 컴퓨터를 살 때 CPU의 성능을 볼 때와, 일명 오버클럭이라는 녀석을 할 때.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컴퓨터 이야기만 해대는 덕후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아, 거기 오버클럭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이거 길게 설명하자니 복잡하다. 간단하게 CPU의 클럭을 강제로 올려서 더 빠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이 중 컴퓨터를 살 때 이야기부터 해보자. 컴퓨터를 맞추며 CPU 가격을 알아보면 정말이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똑같은 모델의 CPU들이 속도만 쥐꼬리만큼 차이나면서 주르륵 진열되어 있다. 지들끼리도 가격이 쥐꼬리만큼 차이나는데, 이게 종류가 많아서 쌓이다보니 쥐꼬리로 태산을 만들어버린다. 결국 최고 모델과 최저 모델의 가격차가 몇 십만 원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구매자는 상당히 난감해진다. 0.1~0.2GHz(클럭의 단위다) 차이를 위해 몇 만 원을 더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진심으로 의문이 든다. 잘 해봤자 최대 성능의 10%도 차이가 안 나는데. 그래서 하는 유명한 말 중 하나가 있다. CPU 성능, 그거 조금 차이나도 써도 모릅니다/체감 속도는 같습니다.

맞다.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저만큼 빨라졌다고 온몸으로 속도를 느낄 정도로 예민한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한 단계 확장해나가는 사람들이다. 같은 원리로 두세 급 차이가 넘어가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 심각한 경우는 쿼드나 듀얼이나~라는 멋진 결론까지 도달하며 스스로의 사양에 열심히 자위질을 해댄다.

웃기고 있네. 너만 모른다. 둔한 것도 정도가 있다. 빠르면 당연히 느껴진다. 물론 평범하게 바탕화면만 띄우고 지뢰찾기를 하면 느끼지 못하겠지. 프로그램 하나 0.05초 정도 빨리 뜬다고 알아채는 건 힘들겠지.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만 컴퓨터를 쓰는 사람 중에 클럭 운운하는 사람 못 봤다.

보통 저 논리를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논리로 오버클럭 무용론을 펼친다. 해봤자 별 차이도 없고, CPU 수명을 깎아먹는 행위이며, 어쨌든 그냥 바보짓이라는 거다. 물론 오버클럭은 정상적인 CPU 사용법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CPU 수명을 깎아먹는 것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과한 오버클럭은 바보짓인 것도 동의한다.

하지만 별 차이 없다는 건 안 해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다. 있는 클럭 냅두고 오버클럭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고, 대부분의 게이머에게 그 이유는 게임을 좀 더 원활한 환경에서 돌리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버클럭은 실제로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간단한 예로 와우만 켜봐도 0.5GHz 차이의 위엄을 영혼으로 느낄 수 있다.

컴퓨터 조립을 위해 예산을 짰다면, 당연히 CPU에게 그 돈의 정상적인 할당량을 주는 게 맞다. 가격에 비례해 클럭이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는 이야기다.주3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좋은 CPU를 선택하는 것도. 그렇게 적당량을 할당한 후에, 고옵션의 게임들이 탐나면 조금 더 그래픽 카드에 돈을 실어주던가하는 식으로 약간의 조정을 할 뿐이다. 별 차이 없다는 말에만 휘둘려 같은 브랜드의 저가형 모델로 몰리는 것은 제발 그만하란 말이다. 심지어 다른 부품들에는 고액을 투자하면서도!

물론 이건 누군가에게 견적을 맡기는 사람들의 생각은 아니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컴퓨터에 관심 있다고 스스로 자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분명히 전한다. 자기가 써보니 별 상관 없더라-라는 식으로 이야기 함부로 옮겨대지 마라. 조금만 느린 프로그램 돌려보면 성능 차이가 느껴지고야 만다. 각 모델 별 가격차가 몇 만 원 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조그마한 성능차가 모여서 결국 혈압 상승으로 이어지는 거다.

클럭은 그저 내가 짜증날만한 조그만 사건이 하나 있어서 예로 들었을 뿐이고, 사실 클럭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RAM 용량이나 하드기록속도도 있고, LCD 패널 차이 같은 것도 있다. 서울대나 연세대나 그저 둘 다 좋은 대학일 뿐이고, 연세대나 서강대나 삐까뜬다는 논리로 전국의 4년제 대학은 모두 동급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지 말라는 소리다.

깔끔하게 정리하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CPU에 돈 아깝다고 생각할 필요 하나도 없고, 오버클럭해도 차이 못 느낀다는 건 뻘소리다. 주4 그럼 끄읏

  1. 이건 그 보안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뭐 그냥 좀 귀찮긴 했잖아?
  2. 성능을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로 이해하자
  3. 마치 클럭이 CPU 성능의 전부인양 쓰고 있는데, 물론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다만 이 글에서는 클럭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4. 물론 오버클럭을 권하는 건 아니고, 고려하고 있는 사람에게 충고해주는 것이 뿐이다. 별 생각 없었던 사람은 계속 안 하는 게 낫다.
2009/12/21 07:12 2009/12/21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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